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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스페인의 역사 (1)

by 여행자로라 202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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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로마 시대 옛 이름인 히스파니아로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이베리아반도, 현재의 포르투갈, 스페인, 안도라, 지브롤터를 통칭하는 히스파니아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하였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아브라함계 유일신교인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오랜 투쟁과 전쟁 끝에 1492년 기독교도들의 왕국이 다시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였다. 1492년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였다. 이후 절대 왕정과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스페인은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전쟁과 내분 끝에 이러한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스페인의 군인 출신 정치가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아래에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였지만, 1975년에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 스페인은 고도의 경제 발전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고, 1986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약 3만 5천 년 전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반도로 4만~1만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크로마뇽인과 유사한 현대적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라는 뜻을 가진 알타미라 동굴에는 선사 시대의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약 기원전 1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 있다. 아타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에서는 이미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두 민족은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이다. 이들은 지중해 쪽과 북동쪽에서 남서쪽에 모여 살았고, 코임브라 및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켈트족의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이베리아족은 그들의 언어를 이베리아반도의 두 번째로 길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량이 많은 강인 에브로에 남겼다. 이베리아족의 후예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지방의 서부를 점령했다.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페니키아인이 들어와 살았으며, 그리스인도 지중해 연안에 그들의 교역 중심지인 식민 도시를 건설하였다. 현대에도 남아 있는 도시가 말라가, 알리칸테가 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있다. 페니키아인은 그 뒤 로마 제국에게 정복당한다. 로마와 대적하여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타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또한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이 이름에서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바르셀로나가 유래했다고 한다.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세 차례에 걸쳐 120년간 벌렸던 전쟁인 포에니 전쟁 후 로마 제국이 영토를 넓혀가면서 지중해를 따라 국력을 계속 확장하였다. 대략 이 시기는 기원전 210년에서 205년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때부터 이베리아반도는 500년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스페인을 “히스파니아”로 부르면서 자연스레 법률을 비롯하여 언어, 로마의 도로 등의 제도를 정착시켜 나갔다. 로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구분포도 달라졌으며, 그 지배 계급은 로마 전체에서도 귀족 계급과 유사한 대우를 받게 된다. 로마인은 타라고나, 사라고사, 발렌시아 등 훌륭한 도시를 많이 건설했다. 당시 스페인은 올리브 열매로부터 얻은 식물성 기름인 올리브기름이나 양모, 금, 포도주, 석탄을 수입하는 무역 지대로 주목받았다. 농업 생산물은 로마 전역에 공급되었다.

로마 제국의 제13대 황제인 트라야누스, 379년부터 395년 죽을 때까지 로마 황제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 등은 이곳 출신이었다. 기독교는 1세기에 도입됐으며, 2세기가 되면서 대부분의 도시에서 널리 수용됐다. 대부분의 스페인어와 종교, 법률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비롯하였다. 최초의 북유럽 민족 집단들의 한 부류인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듦에 따라 5세기쯤에 이르러서 들어왔다. 415년 무렵, 고트족의 중요한 두 분파 중의 하나인 서고트족과 수에비족, 반달족 등의 다른 부족은 피레네산맥을 넘어 이베리아반도로 들어왔다. 서고트족이 세운 왕국은 점차 세력을 뻗쳐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의 영토에 이르렀다. 그들은 유사한 시기에 이주한 수에비족과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이 관리하던 남동부의 영토를 복속시켰다.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히스파니아 지역을 정복한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끄는 아랍인과 나일 계곡 서쪽 북아프리카의 토착 민족 베르베르인 연합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피레네 이남의 안달루시아 현재 포르투갈, 스페인을 정복했다. 이때부터 781년 동안 스페인 지역에서 이슬람 왕국이 존재하였다. 751년 이란 북동부의 역사적 지역인 호라산 지방에서 봉기한 새로운 이슬람 왕조인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한 세 번째 칼리파국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대체하자 우마이야 가문의 압둘 라흐만 1세가 이베리아반도로 건너가 분열된 이슬람 왕국들을 통일한 후, 우마이야 시대를 열었고, 8대 원수 압둘 라흐만 3세 때 이르러 대외적으로 칼리프국임을 선언하였다. 8세기 초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아랍계와 베르베르족의 후손인들인 무어인은 711년부터 718년까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정복했다. 이 정복은 무슬림의 첫 번째 이슬람 세습 칼리파국인 우마이야 제국의 확장 활동의 일환이었다.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킬 자유가 주어졌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커지기 시작했으며, 귀족 계급부터 신분의 제한과 모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10세기와 11세기에 많은 이들이 개종하게 되면서 안달루시아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을 믿게 되었다. 남부 지방에 있는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는 당시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하며 발달한 도시였다.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풍부한 지적 유산이 유럽으로 전해져 오며, 지중해 무역과 문화 간 교류가 꽃을 피웠다. 유대인 학자들과 무슬림은 서유럽의 고전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으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로마화 된 문화가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와 섞여 스페인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압둘 라흐만 3세의 손자인 히샴 2세 시기에는 여러 작은 도시 국가들로 분열된 안달루시아는 1031년부터 1085년까지 분쟁과 협력을 계속하다가, 북부 기독교 세력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게 되었다. 1085년, 북부 국경 지대의 이베리아반도에 있었던 왕국으로 현재는 스페인 내에 있는 톨레도 왕국이 기독교권에 넘어가자 여러 군소 이슬람 왕국들은 당시 모로코 지방의 강력한 이슬람 왕조였던 모라비드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모라비드 왕국은 이를 계기로 안달루시아로 진격해 들어가 이슬람 왕국들을 통합하고 기독교 세력을 재차 몰아내었다. 그 후 모하드 왕국 시대에 이르러 기독교 6 왕국 연합군이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모하드 왕조군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켰고, 무슬림들은 남쪽의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안달루시아 남부 지방만을 지배하다가 1492년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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